social dance 수업을 듣고 라커룸에 왔는데, 락이 사라졌다. 열어보니 누군가 내 옷만 남겨두고 가방만 싹 들고 갔... oTL
하필이면 평소에 거의 안가지고 다니는 현금도 좀 있었고, 하필이면 평소에 잘 안가지고 다니는 디카도 있었는데. ㅠ.ㅠ 게다가 하필이면 평소에 잘 안가지고 다니는 다른 적립카드 기타등등도 많았었단 말이다!!!!!!!!! 평소에 늘 가지고 다니는 iPod이나 외장하드랑 USB는 말할 것도 없고.. ㅠ.ㅠ
집에 가서는 일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아 직장으로 돌아와 일단 은행구좌랑 신용카드 정지부터 시키고(젠장할 놈의 것, 잃어버린 카드가 한 두개가 아니었다)난 후에 집에 돌아갔다.
무슨 맘인지 전화기랑 차열쇠는 들고 수업하러 갔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하나. 차열쇠도 없어졌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 싶기도 하지만, 약이 올라 몸살이 날 것만 같다. -_-;
아침에 DMV에 들러 면허증 신청을 다시 하고 은행 두군데에 들러 구좌 정지한 것에 싸인하고 새 구좌 신청하고 늦게 출근을 하면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돈만 있으면 다시 살 수 있는 디카나 iPod이나 이 모든 게 들어있었던 4년 쓴 코치 가방 따윈, 외장하드에 들어있던 사진이나 과제물 제출했던 것들에 비하면 훨씬 덜 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 여행사진이 거기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이제껏 모아둔 음악이랑 영화같은 건 또 다 어떻게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일단 신분증, 은행, 카드 이런 게 정리되고 보니 역시 제일 아까운 건 늘 가지고 다녔던 우리 alma mater, USC 학생증인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이제껏 무엇을 했는지를 증명하는 물건의 소중함이란 언제라도 다시 살 수 있는 외형적인 것에 비할 바가 아니더라는.
이런 걸 도난당한 것이, 강도 만나서 빼앗기는 거나 차를 잃어버렸다거나 차 사고가 났다거나 하는 일보다 훨씬 가벼운 사고라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리고 왜 하필 나야?!?!?! 이렇게 소리질러봤자 물건들이 되돌아올 것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역시 약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이란 원래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못한 상황과 비교하기 보다는 나은 상황에 비교를 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 속상해 하지 말고 대범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해야지(그치만 이런 말 따위 전혀 위로가 안된다.. 아~ 울고 싶어).
오늘의 교훈: 없어질 물건들은 어차피 없어지기 마련이니, 너무 아끼지 말고 열심히 사용하자?
지난 3월에 손님을 모시고 다녀온 뒤로, 꼭 한 번 저녁 때 올라가보고 싶었었는데 이제서야 다녀오게 되었다. 일 하는 곳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데(창문에서는 보이기도 하는데 ㅠ.ㅠ), 원하는 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게 직장인 생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하늘도 흐렸고, 저녁 때는 산자락 위라 안개도 깔려 있었던 터라 좀 춥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분위기 있고 좋았다.
밖에서만 보고 내려가려다가 마침 플라네타리움 상영을 한다고 하기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학생증을 제시하니 무려 2달러 할인을 해줘서 5달러에 볼 수 있었다. 고대 사람들의 우주관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우주관으로 변하기까지의 내용을 자세하게 가르쳐줘서 좋았다. 난 플라네타리움을 천구 삼아 고대 사람들이 믿었던 별자리를 쏘아 보여주는 걸 제일 좋아하지만. ^^
생각해보니 로스앤젤레스에서 플라네타리움에 들어간 게 처음인 것 같았다. Griffith Observatory에 처음 갔던 때가 2003년이었는데, 그 때는 마침 보수 공사중이었고 공사 후에 재개장을 한지 이제 약 2년 정도되었으니까 말이다. <Charlie's Angels>나 <Transformers>같은 영화에서도 나왔다시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데, 정말이지 사는 사람들도 구경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저녁 무렵, 시원한 밤공기가 딱 좋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올라가면 더욱 맛이 날 것 같다.
1996년 봄, 중학생이 되었다. 집이 성균관 대학교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가회동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타러 대학 앞을 매일 지나다녀야 했다. 대학 정문 앞에는 음식점이 제일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내가 가끔가던 음반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오며가며 본 포스터가 셀린 디온의 앨범 Falling into You 광고 포스터였다. 보면서도 별 생각없이 그냥 다녔었는데, 이상하게도 머릿 속에 이 포스터가 남아있었던 것 같다.
가회동에 자리한 중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잘 근처 교보문고에 들리곤 했다. 핫트랙스에서 음반 구경도 하고 책 구경도 하고.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학교 끝나면 집이 아닌 어딘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고 스스로 어른스러워진 것처럼 느꼈는데 말이다.
어느 날, 핫트랙스에 들어갔는데 음반 매장 전체에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누군지 몰랐는데도 직감적으로 이 사람이 셀린 디온이구나, 하고 알았던 것 같다. CD를 사가지고 집에 와서 음반을 들은 것이 셀린 디온과의 만남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아침, 출근할 때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올 겨울에 LA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셀린 디온의 공연 티켓을 준다고 했다. 전화 해봤는데 실패했지만, 그 광고 덕분에 몇년 만에 It's all coming back to me를, 비록 라디오 버전이지만, 들을 수 있었다.
이게 팝 넘버치고 꽤 긴 곡인데, 나에게는 한국에 케이블이 생기고 집에 하나 달면서 Mnet을 보다가 처음 접한 그녀의 뮤직비디오이기도 하다. 흰 드레스 입고 무슨 저택인지를 뛰어다니며 누군가를 찾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곡이 너무 길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The Power of the Dream이라고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한 곡이 싱글로 발매될 때 라디오 버전으로 같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거 분명히 내가 생일 선물로 받았었는데 어디있는지 한 번 찾아봐야겠다.
1997년에 한국에서 열린 셀린 디온 공연엘 갔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때는 My Heart WIll Go On 이전이라 그만큼의 지명도가 없었던 것 같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이 정말 제대로 히트하고 그녀도 세계 최정상의 가수가 되어버린 후 지난 몇 년간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 팰리스와 계약한 공연을 하느라 다른 곳에서 그녀의 공연을 볼 수가 없었는데....
탁 트인 목소리, 시원한 가창력, 다 좋지만 글쎄... 뭐랄까, 지금의 그녀는 11년 전과는 다른 사람인 것 같은데다가 신곡의 분위기도 예전과 비슷하거나 느낌도 반복되는 것만 발표되는 것 같아 요 몇년간은 새 앨범을 산 기억이 없다. 새 앨범이 나왔었는지도 기억을 못하고 있으니, 원.
타이타닉 이전의 셀린 디온에게는 The Power of Love나 When I fall in Love, Because You Loved Me 같은 곡들이 있었는데, 타이타닉 이후엔 별로 기억나는 곡이 없다랄까. Because You Love Me는 너무 좋아해서, 주제곡으로 쓰였던 영화 <Up Close and Personal>도 찾아봤는데.
그래도 어쨌거나, 라스베이거스에서 드디어 나와 투어를 한다는데 11년만에 공연을 가볼까, 하는 생각에 표값을 알아봤는데, $49.50, $85, $125, $185 이런 순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게... 어쩐지 조금 망설여진다. 에구.. 그냥 참아야겠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의 문화와 역사에 너무 익숙해져서, 크게는 동양인, 더욱 자세하게는 한국인인 나 조차도 문화적 편식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국악의 역사나 한복의 특징은 알지도 못하면서,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의 드레스에 넋을 잃곤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반성, 반성.
중근동이라 하면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였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있는 곳으로, 그 오래된 역사의 땅은 현대에 와서는 대내적으로는 종교적인 이념으로 끊임없는 내전으로 소모되어가고, 대외적으로는 부시 행정부에 의해 이란과 이라크가 '악의 축'으로 명명된 이후 여러모로 부침의 시기를 겪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오래된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문화에 대하여 배우고자 하는 후세인(사담 후세인처럼 들리나?? 중근동 이야기하는데 후세인이라고 쓰니 뭔가 너무 이상하다 ^^;)들에 의해 재발견되고 또 널리 알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나 군사적인 영향력과는 상관없는 어떤 저력을 느끼게 한다.
2008년 9월 27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Hollywood Bowl에서 열린 "A Celebration of Rumi: The Sights & Sounds of Mystic Persia"라는 제목의 공연은 그런 의미에서 관객의 기대를 100% 이상 충족시켜 주었던 것 같다.
첼리스트 요요마에 의해 창단된 Silk Road Ensemble의 세번째 앨범 New Possibilities가 발매된 후 요요마를 포함한 공연으로는 올해엔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2005년 LA필 인턴 시절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Silk Road Ensemble의 공연을 보고 크게 감동받았고, 이번에도 역시 요요마가 같이 연주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망설임 없이 예매를 했다.
지난번 공연이 몽고 지역의 음악을 주제로 했다면, 이번 공연은 제목 대로 고대 페르시아 지방의 음악을 주제로 선곡되었다. 특히 Rumi라고 알려진 Mawlānā Jalāl ad-Dīn Muhammad Balkhī 이라는 아주 어려운 이름의 페르시아 시인의 탄생 800주년을 맞이해 그의 시와 페르시아 음악, 그리고 이란의 전통 붓글씨와 그림, 또 무용을 함께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멋진 공연이었다. 이란 출신의 여배우와 저널리스트가 루미의 시를 영어와 이란어로 소개했고, 음악이 연주될 때는 서예가(라고 표현해야하나?)가 무대에서 작품을 완성시켜 나갔다. 또 2부 순서에서는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전통의상을 입은 무용가가 나와서 여러 동작을 보여주기도 했다. 할리웃 보울의 무대 전체에는 페르시아 양탄자 문양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을 쏘아 공연의 모든 것에서 페르시아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사진은 나중에...).
공연 중에 소개된 Rumi의 시 중 La Makan이라는 작품을 여기에 소개한다.
I’m neither Christian, nor Jewish, neither Zoroastrian, nor Muslim. I’m neither Eastern, nor Western, neither of the land, nor of the sea. I’m not from Nature’s mine, or from the circling Heavens. I’m not from this world, or from the next neither from Paradise nor from Hell. I’m neither from Adam nor from Eve My place is placeless, my trace is without signs. This is neither body nor soul for I belong to the soul of the Beloved. An Out-of-the-World Citizen
기독교인이지만 믿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타종교인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로서는(적어놓고보니 자신없어진다), 문화의 공유를 통한 서로 간의 이해와 소통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공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역시 문화란 어느 쪽이 우월할 수 없고 다양한 것이며, 다양한 문화 만큼이나 다양한 생각을 다르다고 배척해서는 안되며 그 차이를 인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윗 문단을 적으며 생각난 걸 적어둬야겠다.
"모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의미의 심볼인데,
이거 처음 보고 감탄했다.
누가 만든건지 정말 잘 만들었다.
평화적인 공존을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서로간의 이해를
각 종교의 심볼을 이용하여 coexist라는 글자를 이렇게 만들어내다니.
페르시아 음악을 들으면서 한국의 전통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도 있었는데, 창법이 판소리와 같은 부분도 있고 리듬이 한국의 장단(쿵기덕 쿵더러러러, 그 장단 이름이 뭐더라??)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은 게, 어쩌면 고대의 역사는 정말 하나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공연 시작 때 나와서 공연에 대해 소개를 해준 요요마 씨가 10시 반이 지나서야 마지막 곡을 위해 나와서 협연을 했다는 것 정도? 1,2부 동안 네 곡을 선보였는데 곡 하나가 거의 40분 동안 진행되는 곡들이라 정말 오래 걸렸는데 요요마 씨가 연주한 곡은 겨우 20분이었다. ㅠ.ㅠ
그렇지만 역시 제일 좋은 곡이었다. 이 날 직접 연주도 하신 Kayhan Kalhor 씨가 작곡한
Blue as the Turquoise Night of Neyshabur라는 제목의 곡으로 듣는 내내 아름답다고 생각한 곡이었다. 2005년 공연 때도 연주를 했었다는데 내가 이번 공연을 통해 느낀 건, 앞으로는 뭐든 제대로 기록해두는 습관을 기르자는 것이었다. 옛날에 적어놓은 포스팅 읽어봐도 곡 제목 같은 건 그닥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세계의 여러 음악을 소개하고자 노력하는 요요마 씨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줄 만하다고 하겠다. 요요마 씨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유명한 음악가가 클래식 레퍼토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잊혀진 음악의 재발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노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게다가 실크로드라는 유일무이한 역사의 발자취를 간접적으로나마 따라가며 접할 수 있는 음반과 공연이란 보너스도 생기니 말이다.
중간의 쉬는시간까지 포함해 무려 세시간 20분이 걸린 공연, 2008년 여름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훌륭한 공연이었다는 말로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싶다.
The Silk Road Ensemble with Yo-Yo Ma,special guests
Kayhan Kalhor Ensemble with Hamid RezaNourbakhsh
The Whirling Dervishes of Damascus with Sheikh Hamza Chakour & Ensemble Al-Kindi
The Qaderi Dervishes of Kurdistan Nour Mohammad Dorp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