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코폴라 감독,
키어스틴 던스트와 제이슨 슈와츠맨 주연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았다.
작년에 칸 영화제에서 혹평을 받았다고 하고,
흥행 성적도 썩 훌륭하지는 않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는데 그다지 나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의상과 궁전의 화려한 모습들이 시종일관 볼거리를 제공했고,
시집오기 직전 오스트리아의 생활에서부터
시집온 후에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시기까지의 마리의 삶을
마리의 시점에서 보여준 것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이미지였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철없이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웃는 것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소녀.
그런 성질의 소녀가 정략 결혼을 하게 되어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프랑스 궁정에 미래의 왕비감으로 보내어져
딱딱하고 갑갑한 프랑스 궁정 문화 안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궁정 사람 모두에게 감시당하며 살아야 하니 죽을 맛이었을 듯.
거기에다가 결혼 수 7년이 지나도록
남편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정략 결혼의 결과물, 즉 대를 이을 후계자 소식은 없고
왕세자인 남편의 동생들은 자식들을 낳고 있고.
시할아버지인 루이 15세의 애첩인 듀바리 부인과
지속되는 자존심 싸움에 왕세자비가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정치 놀음.
천성이 소녀같았고 황녀로 태어나 정치를 모르는 미래의 프랑스 왕비는
대부분의 틴에이저들이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잊고자 즐기는 것,
즉 파티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파리 시민들이 베르사이유로 행진하고,
왕실을 파리로 옮기기를 요구하여 베르사이유를 떠나 파리로 가는 모습까지를 그렸다.
몇년 후에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모습이 안 나온 까닭이 무얼까 궁금해졌는데,
내 생각은 프랑스 혁명 후의 프랑스는 이미 절대왕정이 아니고,
그렇기에 강력한 왕권과 모든 기득권과 권력의 상징이었던
베르사이유를 떠난 이후의 마리와 루이 16세는 이미 다른 신분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리의 프랑스 생활은 베르사이유 내에 국한되어있었을 뿐이니
왕세자비로서, 왕비로서의 삶이 끝난 후의 그녀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
한 여인이 되너버린 것 뿐 아닐까.
초상화에서 보여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과
키어스틴 던스트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안 어울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소피아 코폴라가 키어스틴 던스트를 선택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키어스틴 던스트에게는 '순진한 소녀스러운' 이미지가 있더라.
오스트리아에서 출발, 프랑스로 향하는 국경지대 근처에서
마리의 신병이 프랑스로 인도되는 의식이 있었다.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도 나오는 장면인데,
거기서 마리는 속옷과 장신구는 물론 기르던 강아지까지도
오스트리아 것은 전부 프랑스 것으로 바꾸게 되는 게 예법이란다.
당황하며 수많은 시녀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혀지던 바로 그 장면에서
키어스틴 던스트가 가진 '소녀스러움'이 잔뜩 묻어나왔던 것.
영화 곳곳에서 보면 '순진한 소녀스러움'이
나이가 듦에 따라 '백치미'로 변화하는 것도 느껴지는데,
그것도 잘 어울리더라.
역할을 잘 소화했다는 칭찬이지만, 이미지로 볼 때 비어보이는 건 좀...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열심히 읽고
그 후에 여러 권의 책도 읽었던 터라
궁정 생활이라거나 문화적인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클래식 음악과 섞여있는 요새 음악들이 의외로 잘 어울려서 좋았다.
그림을 보지 않고 대사와 음악만 들으면
요즘 틴에이저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마리가 가졌던 문제들이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이 비극의 teen queen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부가 있고, 권력이 있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역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
다른 동물들과는 구별된 특권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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