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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버지랑 음악회에 다녀왔다.

디즈니 홀에서 열린 로린 마젤 지휘의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방미하여 순회 공연중인가 보던데,
사실 원래는 주빈 메타가 지휘한 어제 공연을 보려고 했었다.
석달 전에 예매하려고 했는데도 이미 표가 매진되어
그럼 로린 마젤 지휘라도 한 번 보자.. 했는데,
오늘 공연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디즈니 홀에서 열리는 공연 중 괜찮은 값에 괜찮은 자리를 구하는 비법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그건 바로 합창단석을 구하는 방법이다.

합창단이 필요없는 모든 공연 때는 합창석 자리도 팔리는데,
유명 지휘자가 오는 경우에 자리만 잘 잡으면
지휘자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앉을 수 있다.
이 자리의 가격이 제일 높은 층 관객석과 같으니
나는 요즘 이 자리를 선택해서 공연을 보러가곤 한다.

어쨌든...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인지라
오늘 관객들은 대부분이 유태인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고는 어리둥절... 하다가 아차.. 싶었다.
어쩐지 잘못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유태인들 투성이였다는게 아주 특이했다.

로린 마젤은, 사진에서 얼굴만 보던 것과는 다르더라.
체구는 작고 마르고, 거기에 아주 늙었다.
일흔도 훨씬 넘어 이제 여든에 가까워지는 나이지만,
눈매는 역시 무섭고 또렷했다랄까.
정확해보이지만 노교수님처럼 인상은 좋았다.

박수를 받으며 들어오자마자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이스라엘 국가를 연주했다.
곡이 아주 귀에 익은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한이 섞인 듯 슬펐지만, 참 좋더라.

첫 곡으로 선곡된 곡은 멘델스존의 Fingal's Cave.
라디오에서도 자주 들어서 알던 곡인데, 어랏.
보면대와 악보가 없더라는...

지휘봉 돌리는 손놀림에 정신이 팔려 보고 있으려니
곡은 유려하게 진행되고 흘러가고...

두번째 곡은 멘델스존 교향곡 4번 Italian.
역시 경쾌하기 짝이 없는 곡이었다.
악보는 여전히 없었다. 설마...??!!

밝은 1악장과 단조의 2악장, 다시 밝아진 3악장과 즐거운 피날레!

옥의 티가 있다면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이
악장 사이마다 박수를 쳤다는 것.. =_=
아~ 제발 좀!

끊기지 않도록 3악장과 4악장 사이에 틈을 주지 않은 로린 마젤의 센스! 하하..

1부가 끝났는데도 기립박수를 쳐주던 관중들, 난리도 아니었다.

2부의 첫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 Fantasy Overture.
예습을 하고 갔던 곡인데다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역시 라이브에 비할 바가 아니다. -_-

다가올 운명을 예고하듯 폭풍이 치는 듯한 부분들과
더없이 낭만적인 선율아 반복되고,
마지막에는 그 두 주제가 엮여지는 피날레!
감동적이었다. 으와~

마지막으로 선곡한 곡은 라벨의 다프니와 클로에.

드뷔시나 라벨 같은 인상파 음악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멜로딕함과는 거리가 좀 먼지라
쉽게 기억에 남지를 않아 평소에 즐겨듣지는 않아서
이렇게 공연에 와서야 제대로 듣고는 한다.

역시 라벨의 곡 답게, 여러 종류의 악기가 다채롭게 혼합된 아주 인상적인 곡이었다.
조용하고 황홀한 분위기의 전반부에서 강렬한 분위기의 엔딩까지
한시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던 화려한 곡이었다. 좋았다.

공연 후, 네번을 들어갔다 나왔다 할 정도로 커다란 기립 박수를 받은 로린 마젤.

비제의 카르멘 서곡을 앙콜로 들려주며 공연을 마쳤다.
곡 참 좋더라.

로린 마젤의 지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
작은 체구와 적지 않은 나이에 어찌나 다이나믹한 지휘를 하시던지.

전곡을 악보 없이 연주한 지휘자는 처음 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이 제대로 살아나도록
중요한 부분에서 악기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이끌어나가는 모습.
지휘란 걸 잘은 모르지만, 거장답다는 느낌.

오랜만에 정말 좋은 공연을 진짜 제대로 즐기고 왔다.
아버지도 110% 만족하셨고, 나도 그랬다.
더구나 특히 어렵지는 않은 선곡들이라 더욱 잘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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