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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ngels & Demons

2009. 5. 27. 08:26 | Posted by 헤브니
내가 정말로 끔찍하게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중간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다. 목표 설정과 달성에 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읽던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이나 하다못해 시작한 드라마가 아무리 갈 수록 이상해져도 마지막은 꼭 봐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꺼버린 영화가 아주 가끔있는데, 1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 주연의 <세븐틴>이란 애들 영화는 시작 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버려졌으며(...) 최근엔 <다 빈치 코드>였달까? 내용을 믿는 것과는 별개로 소설이 스릴러로서 꽤 재미있었던데다 유럽의 여러 유적지들을 따라갈 수 있다는 공간적 배경이 아주 마음에 들어 큰 기대를 하고 보려던 영화였는데, 주인공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빠져나오고 스위스 은행에 가던 장면 이후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져버려 중간에 껐다. -0-

이런 전례가 있으니 후편을 봐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주말에 개봉한 <터미네이터> 4편이 꽤 괜찮다는 평도 있는데다 나는 <터미네이터> 1,2편의 광적인 팬이라 <터미네이터>를 밀었지만... 모처럼 공휴일을 맞아 같이 극장에 가기로 하신 아부지가 '로마 구경 제대로 할 거라더라'고 하신 말씀에 끄덕이고는 <천사와 악마>를 보기로 결정했다.



<다 빈치 코드>를 읽은 직후에 원작 소설을 읽긴 했지만, 볼 생각이 거의 없었던 영화라 전작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탐 행크스, 감독이 론 하워드라는 것만 알고 갔는데, 세상에! 이완 맥그리거가 나와? 그것도 사제복을 입고, 첫 장면에서 교황의 선종 후 어부의 반지(페스카토리오)를 파기하는 장면부터 나왔다는! 꺄아~ 보러오길 잘했어!



스위스에서 antimatter(반물질이라고 번역된 듯), 물질과 결합하면 모든 것을 가공할만한 폭발력으로 없애버리는 새로운 무기(!)가 만들어지고, 반물질을 만들어낸 주인공인 과학자 비토리아와 역시 과학자이면서 사제였던 실비오(원래 양부와 양녀의 관계였으나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다)는 성공을 축하하지도 못한 채 곧바로 실비오가 살해당하고 반물질이 탈취당한다.

이어지는 탐 행크스의 등장씬. 아저씨, 그 몸매에 수영하는 장면은 좀 아니잖아?! 정말 싫었다. -_-

4명의 추기경이 납치 당하면서 납치자가 남긴 일루미나티의 상징 때문에 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에게 교황청으로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의뢰가 들어온다. 과거, 종교에 반해 과학을 신봉하던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던 일루미나티를 교황청에서 박해, 탄압했기 때문에 납치한 추기경들을 한시간 간격으로 살해한 후 반물질로 바티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협박은 교황 선출 선거인 콘클라베를 위해 모인 추기경들과 콘클라베의 결과를 기다리느라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카톨릭 신자들과 보도 기자들로 가득찬 바티칸에는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협박인데..



일루미나티의 과거 족적을 찾아내기 위해 바티칸의 보물들과 고문서를 모아둔 보관소에 들어간 랭던과 비토리아는 남겨진 수수께끼를 풀어 납치범이 추기경을 죽일 것이라 예고한 시간이 되기 전에 예고된 범행 장소를 찾아 추기경을 살리고자 노력한다.

뭐, 스릴러의 공식이란 게 뻔하니까. 희생자야 나오게 마련이고, 범인의 정체는 가능한 한 마지막까지 숨겨지게 마련이고, 그리고 끝에서는 다들 원하는 결과를 얻게 마련이고...

마침내 찾아낸 반물질의 폭파 시간이 5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헬기를 조종해 가능한 멀리 올라가던 장면에서는 순간적으로나마 숭고함마저 느껴졌는데... 이야기가 반전되고 난 후의 이완 맥그리거를 보면서 느낀 광기. -_- 정말이지 이완 맥그리거의 모습이 천사와 악마를 오고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의 연기의 스펙트럼 또한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주인공 탐 행크스 씨는 중년이 되어갈 수록 매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지적인 탐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루한 이미지에다 스릴러에 어룰리는 날카로움도 없다. 론 하워드랑 친하지만 않았어도 캐스팅 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여주인공 Ayelet Zurer는 동유럽권이 아닌가 생각되었으나 이스라엘 출신이란다. 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미인이었다. 연기도 좋았고.



이 영화와 다른 스릴러의 차별점은 역시 공간적 배경이다. 베드로 대성당과 광장, 시스틴 성당, 산탄젤로 성 등의 유명 유적지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보너스다. 주인공들이 숨가쁘게 뛰어다니는 장소가 로마와 바티칸이라는 사실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거기다가 콘클라베를 위해 모여든 추기경들의 모습, 콘클라베의 과정, 콘클라베의 결과를 굴뚝에서 검은 연기와 흰 연기로 내보내어 선출 결과를 알리는 전통 등 외부에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아 구경하기 힘든 캐톨릭 교회의 전통들을 화면에서나마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교황에 선출된 바지오 추기경의 교황으로서의 첫 등장을 기다리는 성 베드로 대성당 앞의 운집한 관중 같은 모습을 보며, 이번 <천사와 악마>는 론 하워드  <다 빈치 코드>로 인하여 그닥 좋을 것 없었던 종교계와의 관계와 픽션인 화제작을 영화화하면서 생기는 충돌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접점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말미 새로 임명된 Camerlengo 직위의 추기경이 로버트 랭던에게 남기는 말 역시도 "You will write about us... do so gently"라는 당부의 느낌이 강한 말이었으니까.

과학과 믿음의 충돌은 르네상스 이후 가장 '핫'한 이슈라고도 볼 수 있다. 요즘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창조를 설명하려는 창조과학이라는 학문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이 견지하는 진화론과 종교가 믿는 창조론의 충돌은 어떻게 피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종교인들이나 신앙인들도 과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예전보다는 훨씬 열린 입장이니, 크리스천들이 500년 전처럼 과학을 신봉하는 이들을 무조건 박해하거나 반대한다는 선입견은 좀... ; 따지고보면 교회란 건 2000 여 년을 이어져 내려온, 그리고 그동안 꽤나 폐쇄적이었고 현재도 보수적인 단체이니 지난 200 여년 동안의 변화의 물결을 전부 수용할 수도 없었을 테고. 뭐...

스릴러 영화 감상에 과학과 종교의 충돌을 운운하는 것은 원작자가 의도한 주요 테마는 아니지만, 댄 브라운이란 소설가는 하여간 영리하다는 게 내 감상의 마무리다. 화제가 될 법한 테마와 꽤나 광범위한 리서치를 통해 큰 인기를 얻은 소설을 써내다니 말이다. 영리해, 영리해. 게다가 이번 영화에는 프로듀서로 참가까지 하신 걸 보니, 부럽소. 금전적으로 대박 나셨겠소. -0-

아참, 엔딩 크레딧에 보니 각본에 손 댄 사람이 데이빗 코에프다. 내가 이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이 쥬라기 공원 1편인데, 찾아보니 맞더라. 뒤에 줄줄이 따라오는 작품들이 수작들 뿐이군. 어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