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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3 <음악> 아침의 선곡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해가 뜬 것은 느낄 수 있을만큼 환한데 온 세상에 안개가 자욱하다. 눈이라도 내리면 정말 어울릴 것 같은 날씨인데. 아무리 11월 중순까지 여름 기온을 오르락내리락했다지만, 로스앤젤레스에 눈이 내리면 아마 날씨가 드디어는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난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눈이 생각나서 러시아 음악을 듣기로 했다. 에프게니 키신이 연주한 라이브 앨범 뒤에 마침 보칼리즈 편곡을 앙코르 연주한 것도 들어있어서 집어들고 나왔다. 얼마 전에 열린 학생연주회 때 협주곡 2번을 들었는데, 연주 전 연습하는 모습을 오며가며 구경하다 '삘 받아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리히터 님 연주로 열심히 듣긴 했지만 3번은 그리고보니 정말 오랜만에 집었네, 싶었다. 사실 3번은 내 첫사랑이니까.

중학교 1학년이었나 2학년이었나... 동숭아트센터에서 본 영화 <샤인>에서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이 왕립음악학교 졸업 연주회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후 정신분열증으로 쓰러졌을 때 연주했던 바로 그 곡이었다. 이전까지는 클래식 음악은 아빠가 들으라 하셔서 들었고, 교향곡과 협주곡의 차이점같은 것도 알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서 연주되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너무도 좋아하게 된 것이 클래식을 열심히 듣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작은 당연히 호로비츠의 연주였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연주는 소니에서 나온 아르카디 볼로도스의 실황앨범이다. 라이브라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완벽한 녹음상태와 박진감 넘치는 연주가 정말 '짱'인데.

그에 비해 오늘 고른 키신의 연주는 더 서정적인 느낌이랄까. 일단 연주가 느리다. 1악장을 18분 대로 주파하는데, 난 처음에 그게 그렇게도 싫었더랬다. 일단 느린 연주는 싫어!가 한동안 모토였는데.. 호로비츠 할아버지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을 무려 18분대로 연주하는 걸 듣고 식겁 해버려 박진감 넘치는 빠른 연주가 능사가 아니라고 반성하게 되었지만. -.-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키신의 연주를 들어보니 느려서 싫기만했던 그의 연주가 이렇게도 심금을 울리는 연주였는지 새삼스러워진다. 생각난김에 풍월당 가서 교향곡 파일도 몇개 다운받아서 아침부터 오늘은 하루 종일 라흐마니노프와 함께다. 꽤 행복한 하루네. 근데 들을 수록 눈이 더욱 더 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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