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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쓰메 소세키 "문"

2007. 9. 27. 04:38 | Posted by 헤브니
  나는 나의 문을 열려고 왔다. 하지만 문지기는 문 뒤에 있으면서 아무리 두드려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없다. 네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그리하여 그 수단과 방법을 분명 머릿속에 준비했다. 그러나 빗장을 실제로 열 수 있는 힘은 전혀 양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자기가 서 있는 장소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여전히 무능하고 무력하게 닫힌 문 앞에 남겨져 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의 분별력을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 분별력이 지금의 그에게는 탈이 되었음을 억울하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취사선택도 유추도 용납하지 않는 어리석은 외골수가 부러웠다. 또한 신념이 굳은 선남선녀들이 지혜도 잊고 유추도 하지 않으며 정진하는 것을 숭고하게 우러러보았다. 그는 오래도록 문밖에서 서성이는 운명으로 태어난 듯했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도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통과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가는 건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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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문"을 읽었다.
한인타운에 있는 도서관에 들렀는데 괜찮은 책이 있기에 집어온 것 중 하나였다.
지난번에 읽은 "도련님"보다 훨씬 재미없었다.
돈 문제 사람 문제 이런 것들이 얽혀서 재미있어지려나 싶더니,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

260여 페이지 남짓한 짧은 책 한 권을 후딱 해치우면서 남은 건 위에 발췌해놓은 저 한 문단 뿐이다.
문과 인생의 고비라는 비유가 참 적절한 것 같다.
문을 열 수 있도록 힘을 길러야지.

아참, 또 있었다.
초반부에 "이토 히로부미가 변을 당했대" 하던 장면!
"총을 탕탕 연발로 쏘았는데 명중당했답니다"
"왜 만주 같은 곳엘 간 걸까요?"
"살해당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 와 같은 대화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공작'인 건 미처 몰랐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나라에도 알려진 외국 사람을 그 나라 사람이 쓴 글에서 읽는 건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이 "문"이라는 소설이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그후"와 함께 초기 3부작이라는데,
앞의 건 구해볼 수 있으려나 싶다.
보면 보고 말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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