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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반성한다

2009. 7. 23. 14:13 | Posted by 헤브니

6시가 지나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5시 50분까지 오기로 했던 입학지원생이 서류를 내려 왔다. 마구마구 화가 났다.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전화 통화도 여러번 하고 이메일도 여러번 주고 받았는데, 결국은 늦게 왔잖은가.

하필이면 한국인도 아니고 중국 내 M국에서 지원하는 학생이란다. 한국어로 수업은 가능하신지 걱정도 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걸리는 문제도 많은 학생이었다.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는 스캔본이지, 유학생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은행잔고증명도 스캔본이지.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서류는 원본으로 받아야 하고, 학교 서류는 학교에서 사본이 만들어져 봉투에 봉해져서 와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그런데 M국에 있는 학생 대신 서류를 내러 온 누나라는 사람 하는 말이 가관이다.

M국에서는 졸업 때 졸업장 주면 그 이후로는 사본이란 것을 만들어주지 않는다(그 말을 어떻게 믿니), 자신의 친구는 타학교에 스캔본을 가지고 지원을 했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그럼 딴 학교에 가던지).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비자 인터뷰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I-20를 내일까지 만들어 내란다(그럴까봐 내가 이거 일찍 가지고 오라고 했잖아!). 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으아강가!!!

나 이런 사람 정말 싫다. 정말정말 징글징글하게 싫다.

사람마다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내가 겪어본 동양 문화는 일을 미리 준비하고 시간에 맞춰 처리하기보다 마지막 날까지 기다렸다가 뭉개고, 도움을 주겠다고 친절히 대하면 일을 던져놓고 내가 대신 완성해주길 바라는 문화다. 입학과에서 일하기 더럽게 힘든 이유다.

어쨌거나 모든 사람이 퇴근한 시간에 서류를 던져놓고 가서는 내일까지 입학 허가가 나오기를 바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거라며 누나를 돌려보내고 나니....

........하필이면 내일 타학교에서 등록과 교육이 예정되어 있어 아예 출퇴근을 그쪽으로 하기로 했는데다 우리 입학처장님은 이번 금요일에 출근 안하시는 날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학생 폴더 만들어놓고 내가 진행시켜놔야 하는 부분을 진행해 놓고 집에 가는 수 밖에. 이때 시각이 이미 6시 20분이었다.

그런데 투덜투덜대며 학생 폴더를 만들기 시작하며 때마침 퇴근하는 다른 동료를 향해서 내가 던진 말이 가관이었다. 

"이래봤자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닌데 정말 짜증나고 하기 싫으네요."

사실이다. 아무도 상 안 주고 알아주지 않는다.

오버 타임? 남들 퇴근하고 난 후에 일 하는 거 아무도 못 봤으니 노 카운트, 가 아니라 오버타임을 권장하지도 않으니 칼 같이 퇴근하면 좋으련만 이런 일일 수록 밀려있다는 걸 누가 알기라도 하면(꼭 이런 일 일수록 보고 이르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미뤄놓고 갔다고 혼만 난다. 

게다가 오늘 우리 사무실 에어컨 고장났다. 바깥 에어콘 켜놓고 사무실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오후 내내 겨우 살아남았다. 당연히 퇴근 시간에 맞춰 다 꺼져있어 20여분이 흐른 상황에선 열기가 뻗쳐오르는 몸상태였다.


지원생이란 사람은 퇴근 시간에 쳐들어 와서 헛소리하고 가지, 날씨는 덥지, 퇴근은 못하지, 일감만 들었지.................

그런데 말이다, 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이 말 하나 때문에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 공을 홀라당 까먹었다는 생각이 드니 그게 문제란 말이다. 그건 내 정신 건강과 영성을 위해 하면 안되는 말이었고 해서는 안될 생각이었단 생각이 든다.

좋게 말해 저 일을 해놓고 와야만 했던 이유가 내가 내일 자리에 없고 내 상관이 그 다음 날 자리에 없을 것을 생각하고, 입학 지원생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최대한 막아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이었을 터이고, 내 머릿 속에는 이 일을 해놓고 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계산을 마치고 해 놓고 오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음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머릿 속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찼으며 더욱 유치한 것은 그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바깥으로 내뱉었다는 사실이다. 아... 정말 창피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 내가 한동안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블로그에 달아놓았던 명언/격언 구절에서 참으로 마음에 들어했던 구절이 떠올랐다. (이럴 때 성경 구절이 떠올라야 하는데...;)

Whatever is worth doing at all is worth doing well 이라는 말인데 Lord Chesterfield란 사람이 말했다 한다. 알면 좀 따르지 그랬수.

상황은 내가 억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곳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뿐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걸 실행하는 데에는 정말 큰 내공이 필요한 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내일은 한모금이라도 더욱 성숙한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자 한다.

그나저나 오늘 왜 이렇게 더운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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