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마음 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으윽…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작가는 분명히 원작에서 소개된 모든 에피소드를 드라마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과 원작을 각색하는 것이긴 하지만 새로운 창작물인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는 것이니만큼 원작과 차별화된 에피소드도 필요하다는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마자 다음 에피소드로 무 잘라먹듯 갑작스럽게 넘어가는 편집이 나올 수가 없다.
9화에서는 모처럼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잔디가 만든 쿠키를 보고 감동한 준표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핸드폰 경품이 걸린 커플 이벤트에 참가하다가 회장에게 들키고는 바로 장면전환되어 잔디는 난데없이 나타난 지후의 에스코트로 집에 돌아가고, 강회장은 바로 돈다발 싸들고 잔디 집으로 찾아와 헤어지라고 요구하다가, 10화에서는 갑자기 망해버린 잔디네 세탁소와 그런 상황에 대해 전혀 몰랐던 준표의 분노에 찬 길바닥 키스.
11화에서는 갑자기 등장한 하제랑 친해질 사이도 없이 알바 끌려다니며 설정상 ‘친해진’ 잔디가 갑자기 준표에게 ‘너랑 더 이상은 못사귀겠다’고 이별을 통고했다.
12화에서는 하제에게 죽도록 맞다가 F4에게 도움을 받고 바로 상황종료되더니, 다음 장면은 병원이고, 부모님은 딸이 납치감금 당해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 듣지도 못한 상황에서 잔디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빠의 사채빚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까지 오는데 딱 10분 걸리더라. –_-;
준표가 잔디한테 ‘네가 다치느니 내 갈비뼈 10개가 다 나가는 게 낫지’라고 하는데, 원작에서는 갈비뼈 부러진 얘기가 나오기는 하는데, 드라마에서는 부러진 건지 아닌 건지. 부러졌다고 하기에는 이후에 나오는 스키장 얘기가 너무 생뚱맞잖아. ㅠ.ㅠ
이어서 나오는 장면은 작가가 느끼는 ‘새로운 창조에 대한 부담감’을 여지없이 드러내주는 말도 안되는 장면이었다. 금잔디 엄마가 강회장을 찾아가 사채빚을 해결해달라고 구걸하는 장면인데, 이건 뭐냐. 원작에서는 엄마가 딸을 부자집에 시집보내고 싶은 마음에 4억을 받지 않고 회장 머리 위에 소금을 붓는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아빠가 경마로 날린 돈은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직접 빌리고 그것을 갚기 위해 고등학생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설정이었다. 소금 붓는 것 까지는 같지만, 사채 빚을 갚기 위해 직접 엄마가 회장을 찾아가 머리에 소금을 부으면서까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하고선 집으로 와서 딸에게 그런 행동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그럼 아빠 죽으라고?’라고 이야기하다니.
아… 나 정말 1-2화 보고 참 마음에 들었는데, 갈 수록 이건 너무 이상해진다. 충분한 설명 과정이 없이 안드로메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순간이동하는 것 같이 뚝 뚝 끊기는 흐름, 만화 책이라는 평면적 원작에서 영상이라는 입체적 매체로 옮겨왔음에도 그 생동감을 살리지 못하는 아주 단순평면적인 전개, 게다가 원작의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하는 캐릭터 설정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캐릭터 문제를 얘기해보자면, 원작의 잔디는 고민 거리가 있을 때 대강 먹고 풀고 나중에 부딪쳐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아이다. 혼자 고민거리를 안고 끙끙대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학교에서도 그냥 잠들어버릴 정도로 지독히 무신경한 측면도 있고. 그리고, 지후 캐릭터. 원작의 하나자와 루이는 분명히 스토커랑은 거리가 멀었다고. –_-; 시도때도 없이 준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지후의 모습이라니. 잔디가 어딨는지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여자들이 지후에게 반하는 부분은 지후가 아주 가끔 웃을 때 ‘유리알 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반해야하는 거라고. 그렇게 쫓아다니는 남자가 아니란 말이다.
시청률은 잘 나오는 것 같은데, 그게 다가 아니란 사실. 이 작품을 만든 제작사가 2006년에 <궁>을 만들었다는 제작사와 같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이게 제작사의 영향력과 상관없는 문제라면 그럼 이건 감독의 역량인건가? 황인뢰 감독이 만들었던 <궁>도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였지만 처음의 캐스팅 논란을 불식시키고 아름다운 영상과 디테일 넘치는 배경, 음악과 영상, 성장하는 캐릭터들을 잘 표현하셔서 ‘인뢰옵하’라는 별명까지 얻으셨었는데… 제작사 대표 아저씨가 인터뷰 하며 <꽃보다 남자>의 성공 요인이 기획력에 있었다는 인터뷰를 하는 걸 보고는 솔직히 웃어버렸다. 자랑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에이, 몰라. 이제 안 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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