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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파바로티 공연과 에프게니 키신 공연.

2005. 10. 5. 05:02 | Posted by 헤브니
9월 말에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의 빅 이벤트였던 공연 두 개를 다녀왔습니다. 늦었지만, 그래도 올려봅니다.

1) 2005년 9월 24일, 루치아노 파바로티 LA 고별 공연.

Three tenors 중의 한 명, 아마도 지난 세기 동안 가장 유명한 테너였음이 분명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할리웃 보울에서 고별 공연을 가졌다. 고별 투어라는데, 다음 공연이 언제 어디서 열리는 지는 모르겠다.

10월에 70이 된다고 하니, 아마 69세로서는 마지막 공연이 아닌가 싶다. 할리웃 보울을 대관하는 거라, 표값은 천정부지. 가장 비싼 표가 350 달러 정도였으니, 거의 40만원에 육박하는 값이었다.

가장 싼 티켓도 40달러 정도였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가 다 가서 보려고 작정했었는데 못 구했다. 망할!
그러나 내가 누구이던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홍보실 인턴이 아닌가!! 캬아~ 일 하겠다고 자원해버렸다. -_-;;

유명한 공연이라도 보통 홍보실에 할당된 박스석 표 몇 장 정도는 남게 마련인데, 물론 파바로티 공연 표는 남은 게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일이라도 하겠다고 해야지 파바로티를 보고 듣겠지.

노쇠해진 파바로티는 걸어서 무대에 나오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야외 무대 한 가운데에 벽을 설치했다. 벽이 두조각으로 나뉘어 양쪽으로 굴러가며 열리자 이미 무대 위, 그랜드 피아노 뒤에 앉아있는 파바로티가 관객들의 환성에 답을 했다.

신시아 로렌스라는 소프라노가 같이 출연하여 1부의 많은 곡들을 피아노 반주에 맞춰불렀다. 솔직히 별로였다. 어떤 곡 중간에서는 나랑 실장이랑 똑같이 눈쌀을 찌푸렸을 정도였다. 2부에서는 좀 나았지만.

정말 듣고 싶었던 푸치니의 Nessun Dorma는, 높아서 못 부르는지 프로그램에서 빠져있었다. 하지만 라보엠의 "그대의 찬 손"은 불렀고, 2부에서는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을, 앵콜에서는 Brindisi를 불러줬으니 만족.

1부는 다 봤는데, 2부는 듣기만 했다.

기자들 취재에 대한 지침도 굉장히 까다로웠다. 1부의 첫 두곡, 앵콜의 마지막 곡만을 찍고 녹화하게 지시해두었기 때문에, 1부의 두 곡이 끝나자마자 촬영하는 기자들은 모두 내쫓아야만 했다.

쉬는 시간에 방송국에서 몇 사람들이 왔다. 그 사람들은 앵콜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했고, 나와 실장이 같이 기다리게 된 것.

생각보다 잘 들려서 곡을 다 듣기는 들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보는 거야, 뭐...

9월의 야외무대는 춥다. 더구나 할리웃 보울은 숲속이라서..
수건인지 무엇인지를 턱시도 위에 두르고 목소리 조절해가며 부르는 파바로티를 보며, 나이에는 장사없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서서 부르는 것도 못하고 공연 내내 앉아서 불러야 했으니...

목이 덜 풀린 1부보다 2부가 훨씬 좋았고, 앵콜로 O Sole Mio와 Brindisi를 부를 때는 정말정말 행복해져버렸다. 감동적이었다.

1990년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칼라칼라 목욕장에서 열렸던 three tenors의 공연을 처음 본 뒤로 꼭 보고 싶었던 파바로티의 공연을 이렇게나마 보았으니, 그것으로 큰 의미는 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오페라단에 플라치도 도밍고가 총감독으로 아직 건재한데다, 12월에는 직접 출연도 한다니, 은퇴 전에 그 분 공연도 한 번 가보기는 해야겠다.

2) 2005년 9월 29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2005-2006 시즌 개막 갈라 콘서트.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연주하러 온 손님이 피아니스트 에프게니 키신!

몇 년 전에 그가 12살 무렵에 같은 날 연주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듣고 반했었는데, 이번 갈라 콘서트에 출연을 하다니! 놓칠수야 없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렸는데, 갈라 콘서트는 표 값이 기본 1500달러다. 엑. 무리야, 무리. -_-

물론 스태프에게 배포된 표가 있어서 결국 표를 구하기는 했지만.

갈라 콘서트에 오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스폰서다. 나도 인턴할 때까지는 몰랐는데,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은 비영리 단체라서 일년 예산의 많은 부분을 스폰서에 의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로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비영리라니, 놀랐다.

그러니, 시즌 개막의 갈라 콘서트 표값이 저렇게 비쌀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랐던 것은, 남은 표의 대부분을 로스앤젤레스 지역 인근 공립 학교에 풀어 학생들이 와서 볼 수 있게끔 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더구나 로스앤젤레스는 빈부의 격차가 큰 편이라, 노동력의 상징인 남미 이민자들이나 흑인들은 이런 문화적인 혜택은 꿈도 못 꾸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좋은 일 한 거지...

베토벤의 곡으로만 짜여진 프로그램이었다. 교향곡 1번 1악장, 7번 2악장 등과 곡 사이마다 배우 에드 해리스가 베토벤이 쓴 편지들을 읽어 그의 삶에 대해 소개도 해주었다. 에드 해리스가 최근 촬영한 영화에서 베토벤을 연기했다는데, 상상이 잘 안 간다. 아직도 개리 올드만이 출연했던 "불멸의 연인"의 이미지가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마지막 곡으로 에프게니 키신이 연주한 협주곡 "황제"는 아주 좋았다. 곡의 테크닉을 따지면 라흐마니노프나 쇼팽에 비할바는 못된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아름다운 곡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가 오케스트라 우측이었는데, 2층이었다. 그 자리에서 보니 에프게니 키신의 손가락이 제대로 보이는 거다. 나이스~!

정말 아름다운 손놀림이었다.. ㅠ.ㅠ 감동적이었다.
그래, 저렇게 칠 수 있어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거라니까.

듣고있자니 꽤 까다롭던데, 어쩜 그렇게 유연하고도 간단하게 연주를 하던지. 너무너무 좋았다. 손가락 쳐다보다 연주는 제대로 들은 건지, 원..

로스앤젤레스에 여행 오는 여행객들이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의 연주를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듣는 경험도 하고 갔으면 좋겠다. 바로 옆의 자바 시장에서 쇼핑만 즐기지 말고, 문화적인 체험도 하고 그러면 참 좋을 것 같다. 디즈니 홀에서 일 하는 날마다 관광객들을 꽤 많이 보는데, 건축물 자체가 참 아름답게 지어져서 LA의 새 명소로 떠오르고 있고, 홀 자체도 사운드가 예술이라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 위에 야외로 쉴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점심 먹기에도 너무 좋고.

이명박 시장이 서울 어딘가에 음악 전용 콘서트 홀을 짓겠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건축물로서도 예술 자체인 그런 건물을 짓는다면 정말 멋있을 것 같다.